▲출처=팩셀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를 국제질병분류(ICD) 개정 초안에 포함한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는 기술에 중독 개념을 사용하는 것에 우려를 표했던 유니세프(UNICEF)의 2017년 보고서의 내용과 상충된다. 또한 28명의 학자들은 세계보건기구의 이러한 움직임에 반대하는 내용의 공개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들은 게임 중독이 정신 질환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고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이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았으며 세계보건기구가 인권 침해 우려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며 이러한 결정에 반대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전 세계적으로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30% 정도에 지나치 않는다.

세계보건기구 관료들도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게임 중독을 국제질병분류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이들은 해당 국가를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중국과 한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는 인터넷 게임 중독 문제가 심각해 인터넷 중독 캠프가 생길 정도이며, 한국에서는 셧다운제가 도입되기도 했다.

셧다운제는 만 16세미만 청소년에 대해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제도로, 2004년 시민단체들이 청소년의 수면권 확보를 위한 온라인 게임 이용시간 제한을 촉구하면서 처음 제안됐고 2011년 11월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셧다운제 시행 이후에도 청소년의 수면 시간은 1.5분 늘어나는 데 그쳤으며, 부모와 각 기관이 우려하는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세계보건기구가 처음이 아니다. 미국정신의학회(APA)도 인터넷 게임 장애를 잠정적 진단 질환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가 좀 더 정당한 근거를 내세우고 있다.

미국정신의학회는 게임 행위 자체에 문제가 있으며 게임이 약물 중독과 직접 비교할 만한 정신 질환이라는 상정 하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반면 세계보건기구는 비디오 게임에 대한 통제 능력 훼손을 게임 장애로 분류할 예정이다.

게임 장애를 공식적이고 진단 가능하고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규정하기 위해 그간 느린 속도로만 진행되던 각 분야의 움직임이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으로 더욱 가속화될 수 있으며, 각국 정부는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을 기반으로 의료 자원 배분을 재고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상당히 많다. 지속적인 게임 플레이의 영향에 대해 연구한 심리학자 크리스 퍼거슨 박사는 게임 중독을 약물 남용과 같은 강박적 행동과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게임이 약물 중독과 같이 뇌의 도파민 생성 과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도 잘못된 정보라고 지적했다.

퍼거슨 박사는 게임이 뇌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은 맞지만 이는 초콜렛을 먹거나 섹스를 하거나 좋은 성적을 얻는 등 즐거운 행동을 했을 때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옥스포드대학 심리학자인 앤드류 프즈빌스키 박사도 현재까지 실시된 게임 중독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내용이 불충분하다며, 게임 중독을 공식적인 질환으로 분류하면 수백만 명의 온라인 게임 플레이어에게 오명을 씌우고 제한된 의료 자원을 낭비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퍼거슨 박사와 프즈빌스키 박사는 모두 지나친 게임은 위생이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게임 자체가 아니라 과도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과거 연구 결과로 보아 게임 장애는 명백히 우울증, 불안 장애, 주의력 결핍 장애의 증상이라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의 정신 건강 및 약물 남용 책임자 블라디미르 포즈냑은 게임 장애를 공식 질환으로 분류하는 것은 중요한 사안이라며, 게임 장애가 심각한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의료 전문가들이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즈냑은 술을 즐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듯이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대부분의 사람은 질환자가 아니지만, 특별한 경우 과도한 게임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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