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12월 통증의 세기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기술 또는 장치 개발을 위한 제안서를 받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기존 도구로는 지극히 주관적인 통증을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NIH는 통증 측정 기술 및 장치 개발을 맡을 중소기업에 400만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혈액검사, 동공 확장 정도를 측정하는 장치, 얼굴 표정으로 통증 정도를 파악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등이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 프랜시스 콜린스 NIH 원장은 새로운 통증 평가 척도(The pain-o-meter)가 바이오마커 또는 측정가능한 통증 지표를 이해하는 첫 단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통증 부위와 원인을 족집게처럼 정밀하게 집어낸다면 정확한 약물 투여로 통증을 관리할 수 있다.

자가 통증 평가의 허점

현재 의사들은 환자들의 통증을 평가할 때 고통을 나타내는 척도들을 사용하여 환자로 하여금 직접 점수를 매기게 한다. 통증 환자들은 0부터 10까지의 숫자 가운데 불쾌감의 정도를 나타내는 숫자를 선택하는 숫자 통증 등급법 또는 웃는 얼굴에서 우는 얼굴까지 나열된 얼굴 그림 가운데 자신의 고통 정도를 고르는 얼굴 통증 등급법을 이용해 의사에게 통증의 세기를 얘기한다고 USA투데이는 지적했다. 이렇게 자가 통증 평가법을 쓸 경우, 의사들이 환자의 말만 듣고 강력한 진통제를 처방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환자들이 의료용 마약이라 할 수 있는 오피오이드계 진통제를 남용 및 오용하면서 미국 사회는 오피오이드 중독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의사들은 현재의 통증 측정 지표가 오피오이드 중독 사태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기존 통증 측정 도구들은 환자 개인의 DNA, 과거 경험 및 다른 여러 가지 요소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통증역치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증의 서로 다른 원인 또는 다양한 통각(痛覺)을 구분해 통증을 측정하지도 않는다.

다섯번째 바이탈사인 통증

미국통증학회(APS)가 통증은 체온, 심장박동, 호흡, 혈압에 이어 다섯번째 바이탈사인이라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 지 1년 뒤인 1996년, 제약회사 퍼듀파머(Purdue Pharmaceuticals)는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Oxycontin)을 출시했다. 당시 퍼듀파머는 옥시콘틴이 체내에서 서서히 녹아 장시간 진통효과가 지속되며, 오피오이드계 진통제를 복용하면 환자들이 고통을 참을 필요가 없고 중독 위험도 낮다고 홍보했다.

스탠포드대학교 메디컬센터의 통증의학과 장인 션 매키 박사는 오피오이드가 진통제로 간주되지만 모든 통증을 없앨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피오이드는 단기간에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의 통증 완화를 돕기 위해 처방됐다. 하지만 의사들은 환자 개개인이 이 진통제에 어떻게 반응할 지를 예측할만한 신뢰할 수 있는 방안이 별로 없다.

NIH의 통증 및 오피오이드 연구 책임자인 데이브 토마스 박사는 통증 과학을 더 잘 이해하기 전까지 모든 환자들의 통증을 천편일률적인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이라고 말했다. 환자가 오피오이드를 처방 받기 위해 허위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개발될 통증 측정 도구는 이를 감지할 수 있길 바란다.

적극적인 처방시대의 희생자

미국 브랜다이스대학교의 오피오이드 정책연구 공동책임자인 앤드류 콜로드니는 소송 위협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진통제 처방을 중단하는 바람에 수 천명의 환자들이 이른비 '적극적 처방시대의 희생자'가 됐다고 표현했다. 한때 적극적인 치료를 위해 환자들에게 진통제를 대량 처방했던 의사들이 더 이상 처방전을 써주지 않아 통증환자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는 현재 수 백만명의 약물의존증환자들이 환자와 마약중독자 사이 거대한 회색지대에 살고 있다고 꼬집었다.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 보건연구소의 미카엘 폰 호프 선임연구원은 적극적인 처방 정책으로 800만명의 미국인들이 만성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장기간 오피오이드 치료를 받게 됐으며, 이 가운데 약 100만명 정도는 위험할만큼 고용량을 복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보건복지부가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메디케어로 고용량 오이오피드계 진통제를 사먹은 환자의 수가 50만명에 달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오피오이드계 진통제의 처방 과잉을 억제하기 위해 2016년 만성통증 치료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CDC 분석에 따르면, 의사들이 이러한 경고에 주의를 기울인 덕에 2015년 오피오이드계 진통제 처방이 2010년 이후 4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피오이드 위기로 심각한 곤경에 처해있다고 밝힌 퍼듀파머는 CDC 치료 가이드라인을 의사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펜타닐이 함유된 마약성 진통제인 듀라제식(Duragesic) 패치의 제조사인 존슨앤존슨은 당국과 협력해 오피오이드 위기를 타개할 해결책을 찾겠다고 밝혔다.

▲ 출처 = 팩셀스

바이옥스의 귀환

한편 마이샌안토니오는 한 신생 제약사가 머크사의 블록버스터급 소염진통제 바이옥스(Vioxx)를 다시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2005년 머크사는 전 세계에서 시판되던 바이옥스 전량을 자진 회수했다. 바이옥스를 장기 복용하면 심장발작 또는 뇌졸중 발병 위험이 두 배 가량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소형 제약업체인 투르모 제약(Tremeau Pharmaceuticals)은 혈우병에 의한 퇴행성 관절 통증에 탁월한 효과로 인기를 끌었던 바이옥스를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혈우병 환자에게만 선별적으로 처방될 경우, 바이옥스 처방을 받게 될 환자의 수는 과거 머크사가 바이옥스를 판매했을 때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진통제와 달리 오피오이드계 진통제는 위출혈의 위험이 없어 많은 혈우병 환자들이 오피오이드계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다. 연구 결과, 바이옥스도 위출혈 위험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투르모사의 최고경영자(CEO)인 브래드 시피는 막대한 의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하며, 자사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피는 바이옥스 전성기에 머크사의 마케팅 중역 자리를 맡은 바 있으며, 바이옥스의 리콜에도 힘을 보탠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이번 가을 바이옥스의 특허가 만료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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