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7월, 미국 델러웨어에 거주 중인 부모가 자신의 딸을 문 벌레가 '키싱 버그(kissing bug, 침노린재류의 흡혈 곤충)'가 맞는지 확인을 부탁하기 위해 질병통제예방센터(CDC)로 한 장의 사진을 보냈다.

키싱 버그는 사람의 입이나 눈 근처를 물기 때문에 얻은 별칭으로서 학명은 'Triatoma sanguisuga'다. 다정한 별칭과는 달리, 이 벌레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야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몇 가지 증거에 따르면 키싱 버그는 북상하고 있지만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관계당국은 주장하고 있다.

키싱 버그

'뱀파이어 버그' 또는 '어쌔신 버그'로도 알려진 키싱 버그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호주와 라틴 아메리카, 미국 남부 등 따뜻한 기후 지역에서 주로 서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질병 보균 흡혈 곤충은 미국 내 29개 주로 확산됐다.

이 벌레는 1페니 동전의 두 배 정도 되는 크기에 몸통과 다리 둘레에 붉은색이나 오렌지색 띠가 둘러진 어두운 색을 띠고 있다. 몸체가 납작하며 다리 6개가 달려 있고 먹이의 피를 빨아먹을 수 있게 피부 속으로 관통할 수 있는 긴 주둥이를 가졌다.

갓 태어난 키싱 버그는 날개가 없으며 2mm 정도의 크기이지만, 성체는 두 쌍의 날개와 긴 다리가 있고 머리에는 매우 긴 두 개의 더듬이가 있다. 또한, 매우 다양한 야생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고 밤에는 척추동물의 온기를 찾아다니는 침입자가 된다.

T. 크루지 보균체

키싱 버그는 샤가스병(Chagas disease)이라고 알려진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CDC에 따르면, 남아메리카나 중앙아메리카에 다녀온 직후 이 질병에 감염되거나 트리아토마 크루지(Triatoma cruzi) 유형의 키싱 버그로부터 감염된 샤가스병 환자가 미국에서만 30만 명가량 된다.

키싱 버그 자체나 키싱 버그에 물렸다고 해서 위험한 것은 아니다. 트리파노소마 크루지(Trypanosoma cruzi, 일명 T. cruzi)라고 하는 기생충을 보균할 수 있는 유형의 키싱 버그가 위험하다. 이 벌레가 감염된 동물이나 사람을 물게 되면 T. 크루지 보균체가 되고 다음번에 먹이로 삼는 생명체에 배설물을 남겨 기생충을 전염시키는 것이다. 심지어 이 벌레에 물려도 통증이 거의 없다.

게다가 감염된 벌레가 개방형 상처 주위에 배변 활동을 하는 경우, 감염된 배설물이 개방된 상처 속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코나 입, 눈의 점막을 통해 들어갈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기생충은 수혈이나 장기 이식, 오염되거나 조리되지 않은 식품 섭취 등으로 감염될 수 있으며 산모가 태아에게 전달할 수도 있다.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감염된 벌레에 물려서 질병에 감염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미국에서 사람이 키싱 벌레 접촉으로 T. 크루지에 감염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CDC는 밝혔다. 한편, 앞서 언급했던 델라웨어에 거주하고 있는 여아도 샤가스병의 어떤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샤가스병

샤가스병의 최초 단계 혹은 급성 단계가 진행되면 고열과 피로, 감기와 같은 증상, 발진, 통증 (기생충이 들어간 부위), 구토, 설사, 식욕 감퇴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기생충이 눈을 통해 들어간 경우에는 눈꺼풀이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어린 아이와 면역체계가 약한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이 같은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 보통 몇 주 혹은 몇 달 내에 의식을 잃게 된다.

한편, 샤가스병이 2차 또는 만성 단계로 접어들게 되면 심장이나 식도, 직장이 비대해지거나 심부전증, 혈전 등이 유발되며 심각한 경우 급작스러운 심장발작도 발생할 수 있다.

이 질병에 걸린 사람의 30%가량은 심부전증과 심장발작의 위험에 처한다. 미국심장협회(Ameican Heart Association)가 발표한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샤가스병은 심부전과 뇌졸중, 사망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한편 현재로서는 이 질병에 대한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으며 키싱 버그를 피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 되고 있다. 혈액검사로 감염 여부를 알 수 있으며 EKG검사로 심장 문제를 진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