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손해는 아랑곳없이 상대에게 필요 이상으로 도움을 주려는 심리를 백기사 증후군이라고 한다(출처=123RF)

지난 2015년 개봉된 '종이달'은 묘한 매력이 있는 영화다. 일상의 잔잔한 행동과 풍경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서늘함이 시종일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평범한 주부이자 은행 계약직 사원인 '리카'가 우연한 계기로 '고타'를 만나 사귀기 시작하고, 은행 돈을 빼돌려 고타가 진 거액의 빚을 갚아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언뜻 보면 진부한 치정극으로 보일 수 있지만, 종이달은 행복에 대한 메시지가 묵직하다. 리카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타가 오로지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희대의 금융사기를 저지른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말을 불러올지 안중에도 없다. 고타의 행복과 자신의 행복을 동일시하고, 고타의 웃는 얼굴을 보며 따라 미소 짓는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리카처럼 정도가 지나쳐 남을 돕는 일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손해는 아랑곳없이 상대에게 필요 이상으로 도움을 주려는 심리, 이를 두고 '백기사 증후군(White Knight Syndrome)'이라고 부른다.

백기사 증후군이란

'영웅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백기사 증후군은 자신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데도 강박적으로 타인을 구하려는 행위를 일컫는다. '백기사 증후군에 빠진 사람(이하 백기사)'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강하게 끌리는 성향이 있다. 백기사라는 단어 그대로 자신이 '구원자'가 되어 그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백기사 증후군은 과거의 불행한 경험에서 발아한다. 어린 시절에 부모와 잘못 형성된 애착 관계가 대표적인 예다. 부모에게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일수록 타인의 사랑과 인정을 갈망한다. 어린 시절 충족되지 못한 소망은 어른이 돼 타인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집착 심리로 변한다. 그래서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사람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도움이나 사랑을 주고 대리만족을 느끼려 한다. 결국 백기사에게 구원은 그저 명목일 뿐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다.

전문가가 꼽은 백기사의 전형적인 증상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무관심이 두려워 집착한다. 둘째 쉽게 흥분하고 민감하게 군다. 셋째 애정과 보호의 대가를 바라고, 넷째 지각력이 예민하다. 마지막 다섯째로 타인을 조종·지배하려 한다.

남녀 간 백기사 증후군 표출 방식

백기사 증후군에 걸리는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라고 흔히들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백기사 증후군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처럼 공격성을 수반하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남녀 관계에서 남성과 여성의 백기사 증후군은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전문가에 따르면 남성 백기사는 여성을 이상화해 받들어 모시는 성향이 있다. 다만 상대 여성이 도움의 대가를 보이지 않으면 쉽게 적개심을 드러낸다. 도움의 대가란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애정이나 충성심이다.

▲여성 백기사는 남성과 달리 보듬어 안는 형태를 띤다(출처=123RF)

여성 백기사도 남성과 거의 흡사한 방식으로 백기사 증후군을 표출한다. 다만 여성 백기사는 남성과 달리 보듬어 안는 형태를 띤다. 여성 백기사는 부정(不貞)이나 폭력을 일삼는 남성에게 끌리는 성향이 강하다. 그들은 폭력을 휘두르는 파트너를 갖은 구실을 만들어 용서하고, 심지어 파트너의 폭력적인 행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긴다. 일이 잘못되어 혹여 파트너와 헤어지는 사태가 벌어질까 두려운 마음에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리카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은 금융사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믿었던 고타마저 리카의 곁을 떠난다. 리카는 모든 일이 밝혀져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에 은행 창문을 깨고 도망친다.

백기사 증후군은 타인의 불행에 기대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다. 장기적으로 타인은 차치하고 자신에게도 해를 미친다. 행복의 질과 내용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 갖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부 결핍을 인지하고 스스로 채우려고 노력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메디컬리포트=심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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